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냄비에 쌀이 없다

기록*비엔나* 2025. 5. 14. 06:00

아침에 밥을 하려고 냄비를 보니
어제저녁 쌀을 씻어 놓는걸 깜박했다
이런 날이 한 번도 없었는데
'여보 냄비에 쌀이 없네 점심 먹으러 올래요'
했더니 도시락을 싸서 회사 정문으로 오란다

식당음식 먹는 것도 싫고
사람들 너무 많아 줄 서는 것도 싫고
식당에 가면 사람들이 너무 많아  정신이 없어 사무실에 혼자 점심 먹고 일하는 게 편하단다

비엔나 생활에 아쉬운 게 전기 압력 밥솥이다
전기밥솥을 살까 망설였지만 사지 않는 삶으로 선택했다
우리 엄마가 냄비밥해서 도시락 싸서 학교 보내듯 나도 냄비밥을 해서 남편 도시락을 싸야겠다 맘먹고 2년 넘게 잘하고 있었는데
어젯밤 자기 전 쌀 씻어 놓는 걸 깜박했다
아마도 내 탓이 아니고 네 탓으로 이유를 찾는다면
이 블로그가 아닐까 한다

도시락을 싸지 않으니 시간이 여유로워
커피 한 잔 하면서 옛날에 읽었던 책을
눈에 띄는 거 한 권을 잡고 펼쳤다

그곳에 적혀있는 메모

남편 출근하고 나면 또 혼자이다
책이 있고 내 공간이 있어 외롭지만은 않다
읽고 싶은 책을 클릭해서 장바구니에 담아 놓는다
구입하고도 읽지 못한 책들로 쌓여만 간다
언젠가 읽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놓았으니 기회가 되면 읽을 것이다
책을 읽는다고 무엇이 변했니? 나에게 물어본다
날카로운 것이 조금은 무뎌진 느낌
유튜브에서 남들이 사는 집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책을 통해 남들의 생활들을 읽을 수 있고 경험할 수 있고 그들의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좋았다. 그냥 활자가 좋아서 읽는다

책을 많이 읽으면 글도 잘 쓴다는데
난 또 그렇지는 않으니
더 많이 읽어야 하는 숙제인지도 모른다
그냥 생각나는 데로 주저리주저리 진실하게
끌 적 끌 적 적어보는 거다
창피할 수도 있지만
그냥 읽고 그냥 쓰고 이유 없이 하는 거다

밥 먹고 화장실 가고 잠자고 하는 기본 일상에
읽고 쓰는 걸 살짝 끼워 넣어 보는 거다

이 메모를 발견하고는 이런 글을 적었나?
글에 그때의 생각을 모아 보았다
생각은 증발하기에 생각을 붙잡는 방법은 기록 밖에 없는 것 같다

오늘도 출근하고 없는 혼자 만의 시간에
무언가에 푹 빠져있으면 외로움과 그리움은 빼고
나를 위한 시간
내가 만들어가는 즐거움이 있다

냄비 밥을 하고 눌린 누룽지 식사 후 누룽지를 끓여 먹으면 옛 생각이 난다 엄마가 끓여준 구수한 숭녕 한 그릇. 그때는 밋밋하고 심심한 맛 최고의 디저트였음을